첫 일본 여행, 시부야 메가 돈키호테에 들어선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귓가를 쩌렁쩌렁 울리는 '동동동 동~키~' 테마송, 명품 시계 옆에 카레 가루가 놓여 있고, 천장까지 닿을 듯 쌓인 과자 상자들 사이로 사람들이 거대한 장바구니를 밀며 파도처럼 오갔다. 배낭 하나 멘 채 그 한가운데 뚝 떨어진 나는 그저 거대한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손에 쥔 쇼핑 리스트는 무용지물이었다. '파스 코너는 대체 몇 층이지? 이 많은 사람을 뚫고 계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여행 전 참고했던 수많은 블로그와 유튜브 영상 속에서 돈키호테는 '필수 코스'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 앞에서 찍은 인증샷, "이건 꼭 사야 해!"를 외치는 추천 리스트는 안 가보면 손해일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없는 게 없다는 만물상, 저렴한 가격에 면세까지. 특히 친구나 가족 선물을 한 번에 해결하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장점은 '함께'일 때 극대화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명은 줄을 서고 다른 한 명은 물건을 더 담아오는 식의 역할 분담도, 정신없는 와중에 "이거 살까?" 물어보며 의지할 동료도 없이 오롯이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할 때, 돈키호테는 거대한 미로처럼 느껴진다. 만약 당신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어줄 친구도, 짐을 나눠 들어줄 가족도 없는 나홀로 여행자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시부야의 그 밤, 나는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이 곳이 정말 모두가 말하는 쇼핑의 성지가 맞는지, 아니면 나 같은 혼행족에겐 그저 정신없는 개미지옥일 뿐인지, 그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과연 쇼핑의 성지일까, 개미지옥일까?
시부야 한복판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 그게 바로 돈키호테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이곳은 완벽한 양날의 검이다. 장점과 단점이 너무나도 명확해서, 여행 스타일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분명 편리한 점은 차고 넘친다. 늦은 밤 비행기로 도착해 호텔에 짐만 풀고 나왔을 때,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시간에도 돈키호테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출출한 배를 채워줄 야식거리부터 당장 필요한 클렌징폼, 지친 다리를 풀어줄 휴족시간까지 그야말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다. 나 역시 새벽 1시에 숙소 근처 돈키호테에 들러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와 커피, 그리고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은 보조배터리 충전 케이블까지 사서 나온 경험이 있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자나, 갑자기 무언가 필요해진 순간에 이보다 더 든든한 곳은 없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 바로 '시간과 정신력'이다. 특히 신주쿠나 시부야, 도톤보리 같은 번화가의 돈키호테는 저녁 8시만 넘어가도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좁은 통로에서 거대한 장바구니를 든 단체 관광객과 어깨를 부딪혀가며 물건 하나를 집는 것조차 고역이다. 귀를 찢는 테마송과 각종 홍보 방송 속에서 쇼핑 리스트에 적어둔 물건을 찾는 건 보물찾기에 가깝다. 계산대의 줄은 또 어떤가. 면세와 일반 계산 줄이 나뉘어 있지만 어느 쪽이든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혼자 멍하니 줄을 서서 30분 이상을 기다리고 있으면 '이 시간에 차라리 야경을 보러 가거나,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사서 숙소에서 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현타가 밀려온다. 혼자 여행하며 아껴야 할 체력을 쇼핑에 전부 소진해버리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물건의 종류에 따라 쇼핑 장소를 나누는 편을 추천한다. 만약 살 목록이 파스, 특정 화장품, 소화제처럼 명확하다면 돈키호테 대신 ‘마츠모토 키요시’나 ‘선드러그’ 같은 일반 드러그스토어가 훨씬 쾌적하고 빠르다. 진열이 깔끔해 물건 찾기도 쉽고, 계산도 금방 끝난다.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과자나 신선한 도시락, 독특한 지역 맥주를 원한다면 ‘라이프’나 ‘세이유’ 같은 로컬 슈퍼마켓이 정답이다. 저녁 8시 이후에 가면 신선식품을 20~50%씩 할인 판매하는데, 이걸로 숙소에서 즐기는 저녁 식사는 나홀로 여행객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다.
돈키호테가 정답일 때
화장품, 의약품, 과자, 문구류, 소형 가전 등 여러 카테고리의 물건을 한 번에 사야 할 때.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쇼핑이 필요할 때. 회사 동료 선물용 키캣을 종류별로 20개씩 사는 등 면세 한도를 꽉 채울 작정일 때.
다른 곳이 나을 때
카베진이나 EVE 두통약처럼 특정 의약품만 빠르게 사고 싶을 때 (→ 드러그스토어). 저녁에 먹을 신선한 초밥 도시락이나 현지 과일을 사고 싶을 때 (→ 로컬 슈퍼마켓). 조용하고 쾌적한 쇼핑을 원하며, 시간에 쫓기지 않을 때.
결국 이 모든 장단점을 저울질하게 만드는 가장 큰 변수는, 아이러니하게도 돈키호테의 가장 큰 무기인 '면세'일지도 모른다. 이 면세라는 달콤한 유혹이 어떻게 우리의 쇼핑을 피곤하게 만드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좀 더 자세히 풀어보겠다.
면세의 함정, 5,000엔의 벽
돈키호테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면세'입니다. 소비세 10%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건 분명 솔깃한 조건이죠.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알아둬야 할 함정이 있습니다. 면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세금 제외 5,000엔 이상을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정확한 정보는 일본정부관광국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 선물을 잔뜩 사는 거라면 5,000엔은 금방 넘기는 금액이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물건 몇 가지만 사려는 혼행족에게는 이게 은근한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장바구니에 담은 물건을 계산기 앱으로 더해보니 4,500엔. '아, 500엔만 더 채우면 500엔을 아끼는데?' 하는 생각에,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젤리나 초콜릿 코너를 서성였던 경험, 저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결국 면세를 받기 위한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되고, 그 짐은 고스란히 혼자 여행하는 내 어깨와 캐리어의 몫으로 돌아옵니다. 아낀 500엔보다 새로 산 짐의 부피와 무게가 더 부담스러워지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게다가 면세 절차 자체도 생각지 못한 복병입니다. 면세로 구매한 소모품(화장품, 과자, 의약품 등)은 직원이 보는 앞에서 투명한 비닐봉투에 꼼꼼하게 밀봉됩니다. 그리고 이 봉투는 일본을 떠나기 전까지 절대 뜯을 수 없어요. 만약 오늘 저녁 호텔에서 마실 호로요이 한 캔, 지친 다리에 붙일 휴족시간 한 장을 샀다면? 면세를 받는 순간 그것들은 '출국용'이 되어버려 그림의 떡이 됩니다. 숙소에서 바로 사용하고 싶다면 면세를 포기하고 일반 계산을 하거나, 해당 물품만 따로 빼서 일반 계산을 한 번 더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깁니다. 이런 규정을 모르고 무작정 면세 줄에 섰다가 계산대 앞에서 당황하는 여행객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5,000엔 언저리에서 애매하게 금액이 걸렸을 땐, 차라리 과감한 포기도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5,000엔을 채워 아끼는 돈은 약 500엔, 커피 한 잔 값이죠. 이 돈을 아끼기 위해 굳이 필요 없는 물건을 더 사고, 앞선 챕터에서 이야기한 그 혼잡 속에서 일반 계산 줄보다 훨씬 긴 면세 줄을 20~30분씩 기다리는 게 과연 합리적일까요? 물론 쇼핑 리스트만으로 1만 엔이 훌쩍 넘는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면세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니라면, 나의 소중한 시간과 체력, 그리고 캐리어의 남은 공간을 지키는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나홀로 여행자를 위한 실용 팁
결론적으로 돈키호테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필수 코스'는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하는 편리함 이면에는 극심한 혼잡과 과소비의 유혹이라는 분명한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돈키호테를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몇 가지 팁이 당신의 쇼핑을 조금 더 쾌적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첫째, 방문 시간을 현명하게 선택하자. 관광객들이 몰리는 저녁 7시~10시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차라리 아침 일찍 오픈 시간을 노리거나, 아예 늦은 새벽에 방문하면 훨씬 한산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둘째, 쇼핑 리스트를 반드시 작성해가자. 충동구매의 성지에서 당신의 이성을 지켜줄 유일한 동아줄이다. 셋째, 카트 대신 작은 장바구니를 이용하자. 물리적으로 많이 담지 못하게 하는 원초적인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넷째, 면세 카운터 위치를 미리 파악해두자. 계산을 마친 무거운 짐을 들고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돈키호테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다. 때로는 번잡한 돈키호테를 벗어나 숙소 근처의 한적한 동네 드러그스토어나 슈퍼마켓에서 현지인처럼 쇼핑하는 여유가 당신의 여행에 더 즐거운 추억을 남겨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