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의 첫인상은 '아, 발가락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한국의 겨울과는 차원이 다른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렇게 오들오들 떨다가 겨우 들어간 라멘 가게의 뜨거운 국물 한 모금에 천국을 맛봤던 기억. 반면 몇 년 뒤 떠났던 후쿠오카의 겨울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느긋하게 걸을 만한, 기분 좋은 서늘함이었다. 똑같은 일본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매년 겨울이 오면 SNS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홋카이도 사진과 따끈한 온천 김이 피어오르는 규슈 사진으로 나뉜다. 그래서 늘 고민이다. 이번 일본 겨울 여행, 과연 어디로 가야 후회하지 않을까? 로맨틱한 설경이냐, 아니면 추위로부터의 해방이냐. 이것은 단순한 여행지 선택이 아니라, 내가 어떤 겨울을 보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과도 같다.

일본 겨울 여행, 홋카이도 vs 규슈? 실패 없는 선택 가이드
낭만적인 설경의 홋카이도냐, 따뜻한 온천의 규슈냐. 일본 겨울 여행을 고민하는 당신을 위해 직접 다녀온 경험자가 전하는 솔직한 비교와 팁.

새하얀 눈의 왕국, 홋카이도에 대한 로망과 현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지 않나. 영화 '러브레터'의 주인공처럼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향해 "오겡끼데스까!"를 외쳐보는 상상. 이전 챕터에서 말한 '발가락이 사라지는 추위'를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이런 로망에서 나온다.

홋카이도는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곳이다. 삿포로 시내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눈송이, 오타루 운하의 가스등 위로 소복이 쌓인 눈, 그리고 비에이의 광활한 설원 위를 뽀드득거리며 걷는 소리까지. 세상의 모든 소음이 눈 속에 파묻힌 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분명 압도적이다. 특히 매년 2월 초에 열리는 삿포로 눈 축제 기간에 맞춰 간다면, 거대한 눈과 얼음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장관에 넋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낮에는 새하얗게 빛나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물드는 그 풍경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하지만 로망 뒤에는 혹독한 현실이 있다. 홋카이도의 1, 2월 평균 기온은 영하 5도를 밑돌고, 체감 온도는 칼바람 때문에 그보다 훨씬 낮다. 내가 갔을 땐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도 허다했다. 길은 그냥 빙판길이다. 멋 부리다간 큰코다친다. 실제로 오타루에서 예쁜 사진을 찍겠다며 코트 하나 걸쳤다가 30분 만에 숙소로 도망치듯 돌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걷다 보니 다음 날 종아리가 뻐근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옷차림과 신발 선택이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히트텍, 두꺼운 스웨터, 방수·방풍 기능이 확실한 패딩은 기본이다. 신발은 더 중요하다. 어그부츠는 눈에 젖기 쉽고 미끄러워 위험하다. 가장 좋은 건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방한 부츠지만, 여의치 않다면 현지 편의점이나 돈키호테에서 파는 신발용 아이젠(미끄럼 방지 패드)을 꼭 사라. 단돈 1,000엔 정도로, 넘어질 위험을 극적으로 줄여준다. 주머니마다 핫팩을 채워 넣는 건 센스가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다.

추위보다 더 큰 복병은 '교통'이다. 폭설이라도 내리면 삿포로와 오타루, 하코다테를 잇는 JR 열차가 지연되거나 아예 운행을 멈추는 일이 드물지 않다. 특히 여행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는 길이라면 초조함에 피가 마를 수 있다. 그러니 이동 계획은 최소 1~2시간 이상 여유를 두고 짜고, JR 홋카이도 공식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운행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처럼 홋카이도의 겨울은 철저한 준비와 약간의 운이 따라줘야만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까다롭지만 매력적인 여행지다.

홋카이도 겨울의 매력

숨 막히는 설경과 겨울 축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파우더 스노우.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맛보는 뜨끈한 카이센동과 털게 요리. 오직 겨울에만 허락된 '진짜 홋카이도'의 모습.

홋카이도 겨울의 현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얼굴을 때리는 칼바람. 빙판길 낙상은 흔한 일. 예측 불가능한 폭설과 교통 대란. 천정부지로 치솟는 성수기 여행 경비.

추위는 싫어! 따뜻한 남쪽, 규슈는 어떨까?

바로 앞 챕터에서 홋카이도의 혹독한 추위와 교통 대란 가능성을 읽고 지레 겁을 먹었다면, 당신을 위한 대안은 명확하다. 겨울 여행의 낭만은 즐기되, 살을 에는 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싶지는 않은 여행자에게 규슈는 완벽한 피난처가 되어준다.

규슈의 겨울은 한국의 늦가을, 초겨울 날씨를 떠올리면 쉽다. 후쿠오카 기준 1~2월 평균 기온이 5~10도 사이라, 홋카이도처럼 생존을 위한 완전무장은 필요 없다. 두툼한 패딩 대신 코트 하나 가볍게 걸치고 후쿠오카 시내를 걷거나, 유후인의 아기자기한 상점가를 여유롭게 구경하는 것. 캐리어의 절반을 차지하던 방한용품을 덜어내고 좋아하는 옷을 한 벌 더 챙길 수 있는 여유, 이것이 규슈 겨울 여행의 시작이다. 물론 바닷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질 수 있으니 머플러나 경량 패딩 조끼 정도를 챙겨 레이어드하면 금상첨화다.

규슈 겨울 여행의 핵심은 단연 '온천'이다. 차가운 공기에 얼굴은 시원하고, 몸은 뜨끈한 온천수에 푹 담그는 노천온천의 매력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하지만 '온천 천국' 규슈에서도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온천 마을 세 곳의 특징을 알면 선택이 쉬워진다.

유후인 (由布院)

아기자기한 상점가와 갤러리, 예쁜 카페를 구경하며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료칸을 선호하는 커플이나 여성 여행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곳.

벳푸 (別府)

도시 전체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활기 넘치는 대규모 온천 도시다. 끓어오르는 온천을 눈으로 보는 '지옥 순례' 등 독특한 볼거리가 많아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에게도 좋다.

구로카와 (黒川)

산속 깊숙이 자리한, 고즈넉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온천 마을. '뉴토 테가타'라는 마패 하나로 여러 료칸의 노천탕을 순례하는 온천巡り(메구리)가 이곳의 백미다.

홋카이도 같은 설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눈이 아주 가끔 내리지만 쌓이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덕분에 폭설로 교통이 마비될 걱정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맛있는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후쿠오카의 명물인 뜨끈한 모츠나베(곱창전골)나 진한 돈코츠 라멘 한 그릇이면 뼛속까지 따뜻해진다. 해가 지면 나카스 강변을 따라 하나둘 불을 밝히는 포장마차, '야타이'에 들러보는 것도 규슈에서만 가능한 낭만이다. 현지인들과 어깨를 맞대고 앉아 따끈한 오뎅 국물에 사케 한 잔을 곁들이는 경험은 어떤 고급 레스토랑보다 진한 추억을 남긴다.

여행자를 위한 실용 팁

홋카이도의 설경과 규슈의 온천, 앞선 챕터들을 읽으며 마음이 저울처럼 오락가락했을 겁니다. 맞아요,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더 잘 맞는 정답'은 분명히 있죠.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를 최소화하고 만족을 최대화할, 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점검해 볼 현실적인 팁 몇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나의 여행 스타일 돌아보기

나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이 주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절경을 보고 싶은 '모험가'인가요? 아니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안정감 속에서 편안하게 먹고 쉬는 '힐링 추구형'인가요? 전자라면 폭설과 지연까지 여행의 일부로 즐길 수 있는 홋카이도를, 후자라면 규슈가 훨씬 만족스러울 겁니다. 즉흥적인 여행을 즐기는지, 꼼꼼한 계획이 필요한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옷차림, 멋보다 생존

홋카이도에 간다면 멋은 잠시 포기하세요. 방수·방풍 기능이 있는 두꺼운 아우터, 히트텍, 플리스, 귀마개, 장갑은 기본입니다. 특히 신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삿포로 시내 인도는 밤사이 거대한 아이스링크로 변하기 일쑤라, 현지인들은 신발에 부착하는 미끄럼 방지 스파이크(아이젠)를 쓰거나 아예 방한 부츠를 삽니다. 돈키호테나 신발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한국에서부터 챙기지 못했다면 현지에서라도 꼭 장만하세요. 반면 규슈는 두꺼운 코트나 경량 패딩에 여러 겹 레이어드하는 방식이 유효합니다. 실내는 난방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따뜻해서, 쉽게 벗을 수 없는 두꺼운 니트 하나보다는 얇은 옷 여러 겹이 훨씬 쾌적합니다.

교통편, 최악을 대비하는 자세

홋카이도 겨울 성수기 항공권은 최소 3~4개월 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플랜 B'입니다. 폭설로 신치토세 공항이 폐쇄되거나 JR 열차가 끊기는 건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귀국일 비행기를 놓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여행 마지막 날은 공항 근처인 삿포로나 치토세에서 머무는 '버퍼 데이'를 두는 걸 강력히 추천합니다. 규슈는 렌터카 여행의 천국입니다. 눈길 운전 걱정 없이 후쿠오카 공항에서 차를 빌려 유후인, 벳푸, 구로카와까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죠. 유후인노모리 같은 인기 관광 열차는 한 달 전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될 수 있으니 미리 서둘러야 합니다.

겨울이라 더 맛있는 음식들

홋카이도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게 요리입니다. 겨울에 살이 꽉 찬 대게, 털게의 달큼한 속살 맛은 잊을 수 없죠. 삿포로 니조시장이나 오타루의 삼각시장에서 신선한 우니(성게알)와 이쿠라(연어알)가 듬뿍 올라간 카이센동(해산물 덮밥)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도 특별한 경험입니다. 규슈에서는 후쿠오카의 명물 모츠나베(곱창전골)나 미즈타키(닭 전골)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나베 요리로 언 몸을 녹여보세요. 현지인들 틈에 섞여 나카스 강변 포장마차(야타이)에 앉아 따끈한 오뎅 국물에 사케 한 잔을 기울이는 밤, 그게 바로 규슈 겨울 여행의 낭만이니까요.

결국 어느 곳을 선택하든, 일본의 겨울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새하얀 눈밭을 뒹구는 특별한 경험이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노천탕에서의 평화로운 휴식이든, 그곳에는 분명 당신의 겨울을 채워줄 낭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제 고민은 그만, 항공권 검색창을 켤 시간입니다.

* 무단 복제 및 상업적 전재는 저작권법에 의해 엄격히 금지되며, 위반 시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합니다.